그래, 이 모든 게 다 저 깜찍한 아홉 소녀들 때문이다.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에 난데없이 “마지막 경고다, 형돈아. 태연에게 잘해줘!”라는 절규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명품(名品)을 한자로 쓰라는 문제에 뜬금 없이 ‘少女時代’라고 쓴 남학생이 “소녀시대는 가요계의 명품이니까요!”라고 외치며 장렬히 탈락한 건. 20~30대 다 큰 남자들이 별안간 팬클럽으로 돌변해 ‘소시당’을 개설하고 9명 멤버 따라 편을 갈라가며 난데 없이 ‘계파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건, 바로 케이크 위에 생크림으로 하트를 그려 넣으며 깔깔거리는 저 아홉 소녀들 때문이다. 그녀들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의 이성이 단체로 포맷되기 시작한 거다.
◆발렌타인데이에 ‘소녀시대’가 내게 케이크를 내밀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에브리씽 노래방’. SM엔터테인먼트가 직접 운영하는 이 노래방에서 ‘소녀시대’ 멤버가 모두 모였다. 이들 9명이 한꺼번에 다 모이는 건 무려 2주만의 일. ‘조엔’ 창간호 커버스토리 촬영을 위한 만남이었지만, 소녀들은 오랜만에 만난 멤버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다.
“태연아, 마이크 좀 가져와 봐. 우리 노래 부르자!” “윤아 언니, 손톱색깔 언제 칠했어? 나 좀 보여줘!” “파니야, 많이 아파? 감기 걸려서 어떡하니.”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아홉 소녀의 관심을 한 데 모으기 위해선 초콜릿 케이크가 필요했다.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 세 개가 테이블에 놓이자 비로소 다들 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꺄! 맛있겠다”, “이거 우리가 맘대로 장식해봐도 돼요?” “생크림 맘대로 써도 되는 거죠?”
윤아, 수영, 효연, 유리, 태연, 제시카, 티파니, 써니, 서현. 핑크색 옷을 각자 꺼내 입고 나온 소녀들은 그렇게 케이크 장식을 시작했다. 짤주머니를 움직여 하트를 그리고, 리본을 만들고, 글씨를 썼다. “악, 모양 이상해졌어!” “이렇게 못 생겨도 누가 먹어줄까?”
한바탕 소란 끝에 그들이 케이크를 들어 보였다. “어때요? 이거 저희 발렌타인 데이 선물인데, 받아주실래요?” 슬쩍 옆에 선 총각 사진기자 얼굴을 쳐다봤다. 뭐야, 이 사람. 동공이 풀렸잖아!
◆ ‘인형’인 줄만 알았던 그녀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소녀시대가 이렇게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을 줄 미처 몰랐다. SM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내놓은 ‘카드’답게 아홉 소녀들은 지나치게 반듯하고 하나같이 참하고 날씬한 데다 완벽한 군무(群舞)를 소화하는 ‘인형’ 같았으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완벽한 ‘인형’은 오히려 외면 받지 않을까, 어딘지 살짝 허술하고 비틀린 맛이 좀 있어야 팬심을 훔치는 데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첫 번째 내놓은 싱글 앨범 타이틀곡 ‘다시 만난 세계’를 통해 그야말로 일사 불란한 ‘인형’ 같은 공연을 보여줬다. 9명 소녀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은 실로 현기증마저 느끼게 했고, 이는 ‘세일러문’ 또는 ‘파워퍼프걸’의 화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교복을 연상케 하는 유니폼 같은 의상, 어디서 맞춰와도 그렇게 빼내기 힘들 것만 같은 ‘일체주문형 달걀형 얼굴’과 ‘맞춤 개미허리’를 자랑하는 모습이라니. ‘원더걸스’가 경쾌한 복고 에너지를 보여준다면, 소녀시대는 정 반대로 너무 빡빡하게 연습한 모범생 언니들의 매스 게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실제로도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시절부터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며 데뷔무대를 준비했던 이들이다.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기 전에 제대로 된 예쁜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퍼스널 트레이너를 붙여가며 운동 시킨 것은 물론, 멤버 9명을 끌고 모두 바닷가 모래사장을 뛰게 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연. 기획사가 직접 나서서 닭 가슴살 샐러드 같은 저칼로리 고단백질만 먹도록 식단을 짜주는 바람에 일부 멤버들이 때론 “떡복이가 먹고 싶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한 끝에 ‘다시 만난 세계’를 들고 나왔으니, 멤버들이 ‘파워퍼프걸’만큼이나 일사분란하고 오차 없는 무대를 선보였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다.
◆ 반전처럼 떠오른 아홉 색깔 무지개
‘반전’은 그러나 눈깜짝할 사이에 찾아왔다. 어느 덧 아홉 명의 소녀들이 각각 ‘골라 보는 재미’를 선사하기 시작한 것.
윤아가 KBS 1TV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 구박 받는 ‘새벽이’로 열연해 대한민국 시청자 40%를 눈물 바람으로 몰아넣는 동안, 태연은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탱’이라는 별명을 얻고 새롭게 일어섰고, 수영은 ‘식신수영’이란 캐릭터를 입고 각종 연예프로그램을 종횡무진 했으며, 효연은 ‘댄싱 퀸’ 이미지를 부각시켜 그녀만의 자체 팬클럽까지 두기 시작했다. 티파니는 눈웃음으로 대한민국 아저씨들을 호흡곤란에 몰아넣을 때, 써니는 ‘천방지축 라디오’를 진행하고, 제시카는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하며 존재를 알렸으며, 서현과 유리는 유난히 비현실적인 외모로 각종 CF를 통해 10대 팬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해내는 식이다.
‘원더걸스’가 멤버 전체가 모여 있을 땐 누구보다 자유롭고 섹시한 에너지를 폭발 시키지만 정작 각각의 멤버들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땐 어딘지 색깔이 불분명해 독립적인 활동을 많이 보여주지 않는 것과 정 반대로, ‘소녀시대’ 멤버들은 다 함께 모인 무대에선 하나의 색깔로 합체된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각각의 멤버 고유의 개성을 충분히 다른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
소녀시대 팬클럽 ‘소시당’ 회원들이 “소녀시대 팬들이 보통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뚜렷해 계파까지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소녀시대 각각 멤버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한층 강력해진 합체 ‘Gee’
올해 새롭게 ‘Gee’로 컴백한 소녀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통통 튀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소녀시대’, ‘Kissing you’ 등의 노래를 거쳐가며 단합된 SM표 아이돌 무대를 보여주는 데 그쳤던 이들은 각자 활동의 반경을 넓혀가면서 보다 분방한 발랄함을 선사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작곡가 윤상과 함께 ‘랄랄라’ 같은 노래를 작업하면서 각자의 음색을 보다 정교하게 내는 법을 학습한 덕일까. 여전히 유니폼처럼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사진을 찍고, 형광색 스키니진을 맞춰 입고 무대에 서는 ‘소녀시대’지만, 팬들은 소녀시대 9명 멤버가 각각 다른 색깔로 움직이고 있음을, 그렇게 모인 소녀들의 합창 ‘Gee’가 어느 때보다 재기발랄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소녀시대 윤아는 인터뷰에서 “소녀시대의 가장 큰 단점은 뭔가 하나의 확실한 통일성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멤버들이 제각기 자기 개성을 있는 그대로 발산한다는 건데, 그게 또 우리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게 가장 소녀다운 거고, 우리는 소녀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선언하기 위해 나온 그룹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들 안의 ‘소녀(少女)’는 어쩌면 끊임 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소녀(笑女)’로 진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 = 송혜진 기자
사진 =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credits & source : 조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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